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Fehim Taştekin
Türkmenler Türkiye'ye neden kızgın?
al-Monitor
2016년 1월 7일

카르발라의 이맘 후세인 영묘 안에는 이슬람 국가와의 전쟁에서 목숨을 잃은 이들의 시신이 옮겨지고 있었다. 그 시신은 튀르크멘 젊은이의 것이었다. 전선의 많은 사람들의 시신들이 그곳에서 묻히지 않고 나자프Najaf나 카르발라의 영묘로 옮겨진다. 북쪽에는 포성이, 남쪽에는 통곡이 가득하다.

모술과 탈 아파르Tal Afar의 시아파 튀르크멘인들은 IS의 등장 이후 고향을 등져야 했다. 그들은 알하쉬드 알샤비al-Hashd al-Shaabi(대중동원부대Popular Mobilization Units; 시아파 민병대 - 역주)의 최전선에서 전쟁을 치루고 있다. 알모니터의 출처에 따르면 알하쉬드 알샤비에 참여한 튀르크멘의 숫자는 1만 2천 명 가량이다. 예를 들어, 알리 악바르Ali Akbar 여단의 5,000 전사 중 탈 아파르 출신 튀르크멘만 500명이다. 내가 카르발라 정부 병원을 방문했을때, 환자 5명 중 2명이 튀르크멘이었다. 튀르크멘인들은 이라크의 특수부대 수라우 알이티하디야Surau al-Ittihadiya의 주요 구성원이기도 하다. 최근 1년 6개월 간 키르쿠크와 타자 후르마투Taza Hurmatu, 투즈 후르마투Tuz Hurmatu의 튀르크멘들은 무장한 상태이다. 튀르크멘 사람들은 알하쉬드 알샤비의 지붕 아래 조직되고 있으며, 그 지위는 에르빌Erbil의 쿠르드 자치구가 튀르크멘 지역을 손에 넣으려 하기에 그 지위는 논의가 필요하다. 튀르크멘인들은 “어찌되든 터키가 우리의 지위를 보장해 줄거야”라 생각하며 2014년 이전까지는 무장단체에 가담하지 않았다.

모술과 탈 아파르를 탈출한 12만 이상의 튀르크멘들은 바그다드, 나자프나 카르발라와 같이 시아파가 더 안전한 장소로 피난했다. 피난처 가운데 하나가 카르발라 외각 버스터미널 인근에 형성된 난민캠프이다. 1250 가구가 사는 이맘 후세인 영묘에서는 “메르제이예Merceiyye(Marcaiyya: 시아파 최고 성직자 기구 - 역주)의 보호 아래 산다”는 말을 빈번히 들을 수 있었다. 캠프의 튀르크멘들은 터키에 대한 분노와 실망의 말을 뱉어냈다.

튀르크멘인들이 터키에서 돌아서 남쪽의 시아파 지역으로 돌아가는데는 2가지 이유가 있다.

첫째는 터키의 정의개발당 정권이 쿠르드 자치구의 경제적 협력 관계를 수립하는 것을 튀르크멘들은 터키가 튀르크멘의 보호자라는 주장을 버리는 것으로 생각한다는 점이다. 이에 더해 IS의 모술 점령에 터키도 일정 부분 책임이 있다고 여기고 있다. 이것이 두번째 이유다.

우리와 대화를 나눈 튀르크멘인들은 2014년 8월 처음으로 모술과 탈 아파르를 탈출하였으나, 에르빌로 가는 것이 허락되지 않아 무력함을 느꼈다. 카르발라의 캠프에서 작은 식품잡화점을 운영하는 아크람 샤리프는 그떄를 회상했다. “탈 아파르가 떨어졌을때 우린 신자르로 갔어요. 늙은 사람 또는 병든 사람 80명은 학살당했어요. 국회의원 네흘라 헤바비의 70세된 아버지도 그떄 죽었죠. 지금 사람들은 ‘페쉬메르가가 신자르를 IS로부터 탈환했다’고들 말하지만 웃기는 소리다. 우린 신자르에서 탈출했을때 쿠르드인들과 IS는 서로 돌이나 던지면서 거리만 벌리고 있었어요. 우린 두 세력 사이를 지나서 그 지역에서 탈출했구요. 그 사이에 협력이 없다면 신자르가 떨어졌을까요? 신자르에서 남쪽으로 빠져나가서 다후크Dahuk를 통과해서 남쪽의 에르빌로 향했어요. 하지만 켈레크Kelek에서 우릴 멈춰세워서 우리는 도시로 들어가지 못했죠. 통제 문제로 아이들과 3일 간 함께 머물렀어요. 우릴 “바그다드로 보내달라”고 요구했습니다. 그것도 허락하지 않더군요. 그때 중앙정부가 개입했습니다. 페쉬메르가는 우리 신분증과 차량을 빼앗고는 ‘너희는 바그다드로 가야한다’고 말하더군요. 페쉬메르가는 콘보이 한대로 우릴 에스코트해서 바그다드에 보내줬습니다. 에르빌이나 키르쿠크로는 갈수 없다고 말하더군요.”

캠프 근처의 택시 기사 함자 샤리프 역시 “에르빌 바로 앞에서 1달을 대기시키더군요. 켈레크에서는 안전 문제로 ‘튀르크멘인은 갈 수 없다’고 말했고요. 우리 민족은 물과 음식이 없어서 죽어갔어요. 이브라힘 알이브라힘은 모래 폭풍 덕에 걸린 폐병으로 죽었습니다. 최소한 시신만이라도 나자프로 옮기고 싶다고 말했지만 허락하지 않더군요. 어떤 아기는 물이 없어서 엄마 품에서 죽어갔어요. 우리 튀르크멘들을 길가에 묻고 떠날수 밖에 없었습니다.”라고 말했다. 집 3채 상점 3개를 잃은 압둘라디 제라흐Abdulhadi Jerrah 씨는 “터키는 우릴 돕지 않았죠. 신자르로 가니 쿠르드인들이 우릴 팔아넘겨서 여기로 왔고, 이맘의 보호 아래로 피난왔습니다.”라고 말하며 눈물을 쏟았다. 캠프 전체에 이런 이야기들이 떠돌아다니고 있었다.

캠프의 어느 거리에서 이라크 투르크멘 전선Iraqi Turkmen Front의 전 모술 대표 아흐메드 베그달리Ahmed Beghdali가 한 무리의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았다.

“어떤 부족들은 바트당 정권때와 마찬가지로 다시 한번 정권을 엎기 위해 무슨 일이든 하겠다고 준비하고 있더군요. 그러러면 이라크인 전부 죽여야 될텐데, 그들은 신경도 안쓰는 것 같습니다.”라고 말한 베그달리는 터키에 대해서 분노를 쏟아내기 시작했다.

“터키가 제일 문제입니다. 우릴 보호하지 않아요. 프로바이드 콤포트 작전Operation Provide Comfort(터: Çekiç Güç) 이후 잘못된 정치적 행보를 걷고 있어요. 쿠르드인들은 보호하면서 튀르크멘들은 보살피지 않잖아요. 저는 터키 실무자들에게 이걸 몇번이나 말했어요. 게다가 터키는 시리아와의 국경을 통제하지도 않습니다. IS는 계속 국경을 오가고 있어요. 가장 큰 피해자는 튀르크멘이 봤지만요. 모두가 우리에게 복수하려고 하고 있어요. 목적은 튀르크멘을 완전히 쫓아내는 겁니다. 모술의 경제는 우리에게 의존했었죠. 농업도 우리 몫이었고요. 우리가 쫓겨나자 모술은 끝장났어요. 순니파 튀르크멘도 희생자예요. 모두 터키, 바그다드, 자호Zakho, 에르빌로 흩어졌어요. 그들도 우리만큼이나 억업받죠. 하지만 IS와 협력하는 놈들도 있어요.”

베그달리의 생각에 전 니나와 주지사 아셀 알누자이피Atheel al-Nujaifi, 전 의회 대변인 오사마 알누자이피Osama al-Nujaifi, 전 부통령 타리크 알하셰미Tariq al-Hashemi가 터키를 잘못된 길로 이끈다고 생각한다. “터키의 죄가 많습니다. 그때 터키가 막았다면 IS를 멈췄을거고 모술은 점령되지 않았을 겁니다. 터키는 잘못된 사람들과 일을 진행했어요. 누자이프 가문은 모술을 구하려 하지 않고 IS와 협력했습니다. 타리크 알하셰미도 끔찍한 사람입니다. 터키를 구워삶았죠. 타리크 알하셰미는 이라크 정부에 대한 보복으로 IS와 협력했습니다. 터키를 뒷배삼아서요. 저는 모술 총영사 외즈튀르크 이을마즈Öztürk Yılmaz 씨와 면담을 가진적이 있었습니다. 제가 아는걸 전부 솔직히 말했죠. 터키와 이라크 정부 사이에서 장난치고 있다고도 말했습니다. 제게 화를 내더군요. 세간의 평가만큼 알말리키(누리 알말리키 총리)가 독재자라면, 모술은 함락되지 않았을 겁니다. 모술에 대한 정확한 정보가 터키로 전해지지 않았어요. IS가 접근할 때 총영사관 측은 비어있지 않았어요. 분명 뭔가 있었을 거에요. ‘우리에게 손해를 입히지 말라’ 이런거요. ‘그들은 말리키의 적일 뿐이다.’ ‘모두 우리 사람들이다.’ 이런 말을 하더군요. 이라크인들에게 환상을 품고 있는거죠.”

베그달리 씨에게 ‘모술이 어떻게 그렇게 간단히 함락되었냐?’고 물었다. “모술은 하루 아침에 무너진게 아니라 4, 5년 전에 무너져 있는 상태였습니다. IS는 이미 그곳을 통제하고 있었거든요. IS의 허락이 없으면 공직자도 임명할 수 없었는데. 세금도 걷었고 사람도 죽였죠. (모술 경찰서장) 할리드 함다니Khalid Hamdani도 IS의 협력자였습니다. 경찰은 IS에 대항하는 이들을 IS에 넘기고 있었죠. 누자이프 주지사는 어느날부터인가 중앙정부와는 아무것도 하지 않았죠. IS에게 가서 그들과 일을 했어요. IS가 그에게 엿먹이고 있다는걸 알기 전까지 그랬죠. IS가 이 상태가 된것도 다 자초한겁니다. 물론 말리키도 잘못을 했죠. 모술에 3개 여단, 70,000 병사가 있었어요. 게다가 30,000명의 경찰도 있었죠. 근데 어느 날 밤 막사가 텅 비었어요. 사냥이나 다름 없었는데도요. IS는 고장 600명있었어요. 군대에는 시아파와 순니파가 모두 있었죠. 군대의 시아파가 옳냐구요? 아니죠. 어디든지 돈이면 안되는게 없었어요. 아랍 부족들은 IS를 지지했죠. 주부르Jubur 부족이 그랬듯이요. 그들은 IS와 함께 일했어요. 서로 죽여대기 전까지는요. 바트당이 만든 낙쉬반디Naqshbandi  군대도 있었죠. 정말 그들이 낙시Nakşi였다면 모스크들이 터져나가는걸 어떻게 보고만 있죠? 교리에 따라서 개미도 안다치게 한다면서 사람을 죽였대더군요. 모두가 이 학살극의 공범이에요. 신자르가 함락되었을때 페쉬메르가와 IS가 협력했듯이요. 이 게임을 모두 즐기고 있는거죠.”

모술과 탈 아파르에서 이라크 투르크멘 전선의 일부 인원들이 알카에다와 협력하고 있다. 2007년에는 시아파가 다수였던 바흐데Wahdeh  마을에서 알카에다가 폭탄을 터뜨려 시아파 152명을 죽이자, 그 보복으로 78명의 순니파를 죽인 일이 있었는데, 터키의 지원이 알카에다 지역에만 왔다는 소문이 있었다.

베그달리는 이에 대해 이렇게 말했다. “이라크 투르크멘 젠선은 수동적인 태도를 취하고 있습니다. 이들이 적절히 행동하면 순니-시아 분열도 피할 가능성이 있었는데도요. 튀르크멘들 사이에 알카에다가 들어왔었거든요. 그때 전선 책임자들이 똑똑히 행동하지 못했죠. 다른 일에 집중하고 있었어요.”

튀르크멘들의 반발은 IS와의 문제만이 아니라 터키의 이라크 정책 전반에 대한 것이다. 또한 시리아에서 튀르크멘 문제에 있어서 정의개발당 정권이 이라크 문제에 있어 중요한 요소가 되었다는 점을 이해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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