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A Medieval Antidote to ISIS
Mustafa Akyol
The New York Times
2015년 12월 21일

irja. Spencer Charles

이스탄불 ─ 최근 파리와 미국 캘리포니아주 샌버나디노에서 발생한 학살들은 이슬람 국가라 불리는 조직이 무슬림을 이간하는 특출난 재능이 있음을 또 한 번 보여줬다. 문자주의와 독선적인 해석을 조합하여, 극단주의자들은 파키스탄에서 벨기에에 이르는 젊은 남성과 여성들의 복종을 얻어내고, 그 이름 아래에 폭력 행위를 하게끔 할 수 있었다.

이게 IS의 종교적 이데올로기를 심각하게 바라봐야 할 이유다. 이슬람포비아와 같이 이 집단의 생각을 이슬람의 주류라고 보는 것은 오류이지만, 동시에 이슬람포비아에 대해 염려하는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이들을 단지 ‘이슬람과 연관이 없다’고 생각하는 것도 잘못이다. 게다가 지하디스트 지도자들은 비뚤어지고 잔혹하긴 하나, 어쨋든 이슬람적 사고 방식과 교육에 경도된 이들이다.

IS의 독트린을 이해하기 위한 좋은 첫 걸음은 매달 발간되는 온라인 영문선전지, 『다비크Daviq』를 읽는 것이다. 내가 읽은 기사 중에 제일 충격적이었던 것은 3월에 나온 “이르자: 가장 위험한 이단Irja': The Most Dangerous Bid'ah”이었다.

만약 당신이 중세 이슬람 신학을 모른다면, 이르자의 의미에 대해 별 생각이 없을 수 있다. 문자 그대로 해석하면 ‘연기’라 새길 수 있다. 초기 이슬람 시대 무슬림 신학자 일부는 이를 신학적 원리로 발전시켰다. 당시 이슬람 세계는 元순니파proto-Sunnis와 元시아파proto-Shiites로 나뉘어 내전을 벌이고 있었으며, 하와리즈Khawarij(반대자)는 양측 모두로부터 배척받으며 학살당했다. 이 피투성이 혼란 속에서, 이르자의 지지자들은 누가 진정한 무슬림인지 판단하는 문제는 사후까지 ‘연기’되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르자주의자들은 심지어 모든 종교적 의무를 저버리고 수 많은 죄를 범한 무슬림이라하여도 ‘배교자’라 매도해서는 안된다고 주장했다. 신앙이란 마음의 문제이기 때문에 인간의 능력으로는 측량할 수 없으며, 신만이 평가 가능하다는 것이다.

이런 주장을 한 학자들은 이후 ‘무르지아murjia,’ 즉 이르자의 지지자 또는, 더 간단하게 ‘연기자postponer’라 알려지게 되었다. 이 신학 이론은 이후 관용적이고 비강압적이며 다원론적 이슬람 ─ 이슬람 자유주의Islamic liberalism의 토대가 될 수 있었다. 불행하게도, 무르지아들은 이슬람 세계에 충분한 영향력을 떨치지 못했다. 이 학파는 곧 사라지고, 순니 오소독스의 기억에 단지 초기 ‘이단들’로만 남았다 무르지아는 하나피-마투리드주의로 대표되는 순니 이슬람의 관대한 종파들에게 흔적을 남겼는데, 이 종파는 발칸, 터키, 중앙아시아에 다수이나, 오늘날 그 어떤 무슬림 집단도 스스로를 무르지아로 규정하지는 않는다. 이르자irja라는 단어는 이슬람 신학을 논할때 좀처럼 등장하지 않는다.

그럼 왜 이런 오래된 ‘이단’에 대해 IS가 경고한 걸까? 이 질문에 대한 대답은 『다비크』의 기사 그 자체에 있는데, 그 저자는 시리아의 다른 이슬람주의자 반군 집단들에 대해 이르자로 규정했다. “이 파당들은 ‘자유로워진’ 땅을 확보했음에도 샤리아에 따라 통치하지 않는다”며 IS의 작가는 혐오를 드러냈다. 즉, 이들은 ‘배교자’를 죽이거나 태형을 집행하지 않으며, 여성들에게 머리 끝부터 발끝까지 모두 가리는 천쪼가리를 강요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IS가 이르자를 범하고 있다고 규정한 집단들─대개 보수적 이슬람주의자들─은 쉬이 이런 레테르를 받아들이지 못하는 것 같다. 그들의 종교적 책들 역시 이르자를 이단으로 나타내고 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종교를 강제하거나 죄인을 처벌하는 것을 ‘연기’하는 것을 인정한다는 것 자체가 사실상de facto 이르자이다. 원칙적이 아니라 실용적이라 해도 말이다.

실질적으로, 수백만 무슬림들은, 이르자란 용어에 익숙든 익숙치 않든 간에 이르자와 연관되어 있다. 누군가는 중세 샤리아법 대신 코란에 집중하고 코란의 유명한 경구 “종교에 강요는 없어야 한다”를 즐겨 인용한다. 또 다른 이는 신비주의적 이슬람 종파인 수피즘에 영향을 받아, 규정을 엄격히 수행하기 보다는 개인의 신앙심에 주목한다. 이르자라는 규정을 통해, IS는 관대한 무슬림 전부를 목표로 삼고 있다. 『다비크』의 표현을 빌자면, IS야 말로 “이슬람을 현실성 없는 단순한 주장으로 만든다.” 그들이 유념해야 할 사실은 “알라의 자비와 용서는 죄인에게도 예외가 아니다.”

무슬림의 한 명으로써 나는 나와 같은 생각을 가진 사람들에게 이르자 뱃지라도 차서 이 지혜를 살리자고 제안하고 싶다. 천년 전 우리가 잃어버린 신학 이론이 이제 종교적 내전을 끝내고, 만인에게 평등한 자유를 위해 필요하다.

이르자를 신학적 해결책으로 본다면, IS의 존재는 종교적 독실함이 부족함을 보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그러나 진정한 신앙은 겸손─겸손은 인간으로써 신을 높이는데서 온다─이다. 즉, IS의 광신은 인간으로써 타인을 평가하고 그들을 지배할 수 있단 오만에서 출발했다.

무스타파 아쿌은 Islam Without Extremes: A Muslim Case for Liberty의 저자이며, 여러 사설을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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